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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오피스를 없앨까?...한옥의 '이름 없는 공간'에서 찾은 오피스의 미래

AI 활용으로 인한 화이트칼라 감소 공포에 오피스 관련 기업 주가 급락 '머릿수'로 따지던 오피스 면적 계산법 달라진다

2026-02-19 07:59:24김우영kwy@corebeat.co.kr

AI가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에선 먼 이야기였다. 실제 AI는 아직 오피스 한 층도 비우지 못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AI 공포로 인한 매도(AI scare trade) 파도가 덮쳤고 상업용부동산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 맨해튼 최대 오피스 리츠인 SL그린(SLG) 주가는 연초 이후 13% 넘게 빠졌다. 외부의 시선도 차가워지고 있다. 올해 들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씨티, 바클레이즈 등 주요 투자은행들이 SL그린 목표주가를 내리면서 컨센서스는 56.79달러에서 51.83달러로 약 9% 떨어졌다. 매출 성장률 전망치는 5.05% 증가에서 무려 8.45% 하락으로 급반전됐다. 


시장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AI가 화이트칼라 노동력을 줄이고, 이로 인해 오피스 수요가 위축되면, 부동산 기업 실적 악화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지금까지 노동 시장의 공식에 충실하다. 업무량에 비례해 노동력은 줄거나 늘어나고, 그 노동력은 사람 머릿수를 의미한다.


기능을 따르는 현대 오피스 건물들

현대 건축은 철저히 기능 위에 세워졌다. 회의는 회의실에서, 업무는 사무실에서, 휴식은 휴게실에서. 모든 공간은 명확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이름을 부여 받는다. 천편일률적인 사무실과 끝없이 이어진 회의실, 정문을 나서야 겨우 숨을 고를 수 있는 회색 건물이 오피스 빌딩의 전형이다.


기능이 없는 공간은 낭비로 간주됐다. 그래서 이름이 없는 공간은 '죽은 공간'(Dead Space)으로 치부됐다.


이러한 사고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개발자, 회계 담당자, 영업맨 등 사람 역시 기능 단위였다. 몇 명의 기능 인력이 필요한지가 곧 필요한 공간의 크기를 결정했다.


이러한 논리에선 사람 수가 줄어들면 공간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결론이다.


하지만 AI가 정말 현실의 물리적 공간까지 줄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AI가 일과 노동력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면 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의 '기능'을 대신하는 AI...사람과 공간도 달라져야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실린 연구 결과는 AI가 가져올, 일에 대한 통념을 배반한다.


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의 아루나 랑가나단 부교수와 싱치 매기 예 박사과정 연구원은 약 200명이 일하고 있는 미국 기술기업을 8개월 간 관찰했다. 그 결과 생성형 AI가 업무를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에 따르면 직원들은 더 빠른 속도로 일하고, 더 넓은 범위의 업무를 떠맡으며, 더 긴 시간 동안 일했다. 직원들이 스스로 더 많은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진은 AI가 업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세 가지를 지목했다.


첫째, 업무 범위 확장이다. AI가 지식의 공백을 메워주면서, 직원들은 다른 직무의 영역까지 맡기 시작했다. 제품 매니저와 디자이너가 코드를 짜고, 연구인력이 엔지니어링 업무를 수행하는 식이다. 과거라면 외주를 주거나 맡지 않았을 일을 개인들이 스스로 흡수해 나간 것이다.


둘째, 업무와 비업무의 경계 붕괴다. AI로 인해 직원들은 점심시간이든 회의를 하는 도중이든, 심지어 파일을 내려받는 시간에도 짧은 프롬프트를 입력하며 업무를 이어갔다. 표면적으로는 '짧은 한 줄 입력'이지만 이러한 행동들이 쌓이면서 휴식의 밀도는 줄어들고 하루 전체가 업무로 채워지는 것이다.


셋째, 멀티태스킹의 증가다. AI를 '파트너'로 여기면서 직원들은 동시에 여러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코드를 작성하는 동시에 AI가 다른 버전을 생성하고, 장기간 미뤄둔 업무도 동시에 진행하는 식이다.


이러한 현상을 연구진은 '자기강화적 순환(self-reinforcing cycle)'이라고 표현했다. AI가 업무 속도와 기대치를 동시에 끌어올리면서, 결과적으로 업무 총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단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람 수는 줄어들 수 있어도 한 사람이 수행하는 업무의 밀도와 범위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사람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필요한 공간까지 줄어들까?


아니 그 전에, AI가 인간의 기능을 대신하면서 인간이 하는 일의 범위와 역할의 경계가 흐릿해진다면, 그동안 기능에 따라 붙였던 사람과 공간은 계속해서 그 이름을 고집할 수 있을까?

설계되지 않은 남겨둔 공간의 가치

현대 건축에 익숙한 탓에 낯선 모습일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공간이 항상 기능 중심으로 설계된 것은 아니다.


한국 전통 양반집에는 현대 관점에선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이 있다. 사랑채, 안채, 행랑채 등 이름이 붙은 공간은 각각의 기능이 있다.


그런데 안채 주변에 수상한 공간이 있다. 안채와 그 양옆 담장 사이 공간을 보면 마당이라고 하기엔 좁고, 통로라고 하기엔 넓다. 특히 안채에서 부엌으로 통하면서 동시에 창고로 연결되는 쪽은 도무지 무슨 기능을 하는지 정의 내리기 모호하다.


충남 논산에 있는 윤증고택. 사진 왼쪽 음영처리 부분이 기능이 모호한 '남겨진 공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에 대해 건축가 이상현 명지대 교수는 저서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행동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용도를 정하지 않은, 내버려두는 공간'으로 해석했다. 데드 스페이스인 척하는 공간, 설계한 공간이 아니라 남겨둔 공간이란 것이다. 


아마도 며느리들이 모여 시어머니 험담을 하거나, 시어머니에게 혼난 며느리가 친정 엄마를 생각하며 남몰래 눈물 훔치던 공간일 수 있다고 이상현 교수는 짐작했다. 이런 곳은 이름이 없다. 어떤 특정한 기능을 부여받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름이 있거나 기능이 분명하다면 이러한 공간은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시어머니 험담하는 곳'이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나. 이름이 없기에 며느리들은 혹여라도 시어머니 험담을 하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레 부엌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쓸모 있지만 이름만 없었을 뿐인 이러한 공간은 현대의 기능주의 시대로 오면서 비효율적인 '죽은 공간'으로 격하되었고, 현대인은 그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기능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갖춘 공간으로 진화

다시 연구 결과로 돌아가면, AI는 단지 생산성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경계도 흐리고 있다. 기능 중심 노동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제품 매니저가 코딩을 하고, 디자이너가 엔지니어링을 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으며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변화는 단순히 일이 더 많아졌다, 노동자가 더 바빠졌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오피스 공간을 설계해온 기능 중심의 기본 전제를 흔드는 변화다.


그동안 기획자는 기획실에서, 개발자는 개발실에서 일을 했다. 사람은 기능 단위였고, 공간 역시 이에 따랐다. 이 체계에서는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가가 곧 얼마나 많은 공간이 필요한가를 결정했다.


하지만 업무가 기능 단위로 나뉘지 않는다면, 공간 역시 기능 단위로 나누기 어려워지고 구분은 점점 모호해진다.


공간의 가치는 '무엇을 하기 위한 곳'인가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가'로 바뀐다. 이는 기능별로 나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더 많이 요구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AI가 인간의 기능을 대체할수록, 특정 기능에 박제되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공간, 기능은 죽고 가능성은 살아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고도의 몰입을 위한 공간, AI파트너와 협업하기 위한 인프라 성격의 공간, 수시로 바뀌는 역할에 대응할 수 있는 심리적 여백을 위한 공간 등 다양하게 불릴 수 있다.


AI로 인한 노동력의 감소가 곧바로 오피스 면적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아파트에서 목도한 변화

이는 한국 주거 시장, 즉 아파트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한국 아파트의 이른바 '국민평형'은 전용 85㎡(25평)다. 이는 1970년대 가구원 수를 기준으로 산술적으로 도출된 것이다. 한 사람이 살기에 필요한 면적이 약 5평(16.5㎡)으로 보고 당시 평균 가구원 수인 5명을 곱해 25평이 표준으로 제시됐다.  


이후 각종 세제와 대출, 청약 등에서 일종의 기준선 역할을 하면서 50년이 훌쩍 지나서도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공간 논리라면 가구원 수 감소는 필요 면적 축소로 귀결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가족 구성원은 계속 줄고 있지만 여전히 중대형 면적 수요는 탄탄하다.


예전 집의 기능 혹은 역할은 명확했고 그에 따라 공간도 구성됐다. TV를 보면서 쉬는 거실, 밥 먹는 주방, 잠자는 침실이면 족했다.


하지만 이제 집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일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취미를 즐기거나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운동을 하고, 나를 꾸미고, 때론 혼자만의 시간도 갖는다. 


1980년대와 2010년대 준공된 아파트 평면도. [네이버 부동산]

'화캉스'(화장실+바캉스)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해도 그런 공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오죽하면 씻거나 배변을 하는 공간인 화장실에서나마 잠시 여유를 갖는 다는 자조다.


이처럼 한 사람이 집 안에서 행하는 역할이 늘면서 공간의 기능도 더 이상 거실, 주방, 침실처럼 단순한 분류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공간은 더 다양해졌다. 알파룸, 드레스룸, 홈오피스 등 건설사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름을 붙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름 붙이기를 위한 이름일 뿐, 집주인이 그렇게 부여된 기능에 따라 해당 공간을 쓸 필요는 없다. 어떻게 활용할지는 집주인의 몫이다.


사람 수는 줄었지만 필요한 공간은 더 늘어난 한국 아파트의 모습은 사람과 물리적 공간이 머릿수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머릿수' 아닌 '활동'으로 평가해야

이는 AI 시대 노동 변화와 그에 따른 오피스 공간에도 다르지 않다. AI는 직원 수를 줄일 수는 있지만 그가 수행하는 업무의 범위와 밀도는 늘린다.


그 결과 필요한 공간은 단순히 컴퓨터 한 대 올려 놓을 책상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수행하는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고, 하루 안에도 역할이 계속 바뀌며,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환경에서는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무작정 넓은 공간이 아니라 유연한 공간이 필요하다. 또 기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대판 '데드 스페이스'가 다시 필요해질 수 있다.


다만 이런 변화가 모든 오피스 빌딩에서 가능하진 않다. 공간 구조 변경이 어려운 빌딩은 새로운 형태의 업무를 수용하기 어렵다. 기능중심 시대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오히려 훌륭한 설계를 따른 공간이 구조적 제약이 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면 층고가 충분하고, 평면이 단순하며, 자유롭고 유연하게 설비 변경이 가능한 오피스는 더 많은 기능 혹은 새로운 기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진화할 수 있다. AI시대 부동산은 '머릿수'가 아니라 '활동의 총량'을 담는 공간이 돼야 하는 것이다.


결국, AI는 사무실을 없애는 파괴자가 아니라 어떤 오피스가 제대로된 공간으로 가치를 지니는지 가려내는 냉정한 감별사에 가깝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