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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복귀'가 '과거 회귀'가 되지 않기 위한 미국 오피스의 '진보'
사무실 복귀, '삶의 질'-사회적 불평등 문제로 격상 편의시설을 넘어선 오피스 혁신이 임차 유치 성공 갈라 사회성과 연계된 투자 주목
최근 미국 뉴욕의 한 신축 빌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들어선 지역이 뉴욕 최중심지인 파크 애비뉴이긴 합니다. 하지만 규모만 놓고 보면 그리 특별하진 않습니다. 60층, 약 7만평입니다. 뉴욕에선 흔하디 흔한(?) 빌딩입니다.
이 빌딩이 주목을 받은 건 다름 아닌 JP모건이 6년만에 완공한 신축 본사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JP모건은 이달 말부터 입주를 시작해 10월 전면 개관을 할 예정입니다. 수천명의 JP모건 직원들은 이제 새 사무실로 매일 출근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뉴욕 오피스가 돌아왔다'(NYC Offices Are Back)며 대대적으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미 대기업들, 재택 아닌 사무 실 출근 전환
코로나19 기간 재택근무가 보편화하자 뉴욕 오피스 시장도 침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30억달러(약 4조2000억원)의 투자유치에 성공해 신축한, 수천 명의 글로벌 최고 금융투자업계 인재들로 북적이는 빌딩은 뉴욕이 비즈니스 및 금융 분야의 리더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란 상징과도 같습니다.
JP모건뿐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많은 대기업들이 속속 사무실 복귀를 결정하면서 도시가 다시 북적일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도 기존 하이브리드 근무(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 병행)에서 완전한 사무실 근무로 전환했습니다. 아마존 역시 올해부터 주 5일 사무실 출근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JLL이 포춘 1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2022년 4분기 전일 출근은 단 2%밖에 되지 않았지만 올해 1분기엔 39%로 급증했습니다. 반면 전일 재택은 14%에서 1%로 급감했습니다. 하이브리드 형식 역시 70%에서 56%로 감소했습니다.
전체 오피스 공실률은 여전히 높아
그런데 각종 수치를 보면 여전히 오피스 공실률은 높습니다. 집계하는 기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치솟은 오피스 공실률은 2025년 상반기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신규 착공이 줄고 재고 면적도 감소하면서 점차 오피스 공실률이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곤 있지만 급격하게 확 떨어질 것이라 내다보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일차적인 이유는, 사무실 복귀가 일부 대기업 위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 건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미국 소식은 대부분 초대형 기업들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일종의 편향(bias)이 생기게 됩니다. 실제로는 고용 규모가 작은 소규모 기업일수록 유연근무 혹은 재택근무가 월등히 우세합니다.
파업까지 고려할 정도로 재택근무 선호
또 하나는 직원들의 강력한 반발입니다. 이는 미 초대형 기업 가운데도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이 여전히 풀타임 사무실 근무를 강제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냥 볼멘소리를 하는 정도로 반발하는 게 아닙니다. 파업까지 고려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길 정도입니다.
MS의 자회사인 게임업체 케니맥스 미디어(베데스다 모기업)의 일부 부서 직원들은 재택근무 방침 변경 소식에 파업을 벌였습니다.
JP모건은 풀타임 사무실 근무를 하기로 했지만 그 과정에서 직원들이 집단 반발하며 노조 결성을 추진했습니다. 회사는 비판글로 도배된 내부 게시판 이용을 제한하기도 했죠.
WFH(Work From Home)에 따르면 테크, 금융 등 고소득으로 알려진 직종에서 재택을 놓고 파업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이들 업종의 평균 재택일수는 더 높습니다.
재택근무로 삶의 질 상승 경험한 미국인들, 사무실 출근 거부
그렇다면 왜 미국 직장인들은 이토록 사무실 복귀를 반대하는 걸까요? 단순히 출퇴근에 드는 돈과 시간이 아깝고, 대면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싫어서 투정을 부리는 건 아닙니다.
근무 형태는 곧 삶의 질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재택근무 확대는 주거 선택의 지리적,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자유도가 올라간다는 건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출산율 반등입니다. 미국 출산율은 2022년 7년만에 상승했습니다. 특히 주요 대도시 중 뉴욕의 출생 인구 수 증가율이 두드러졌습니다. 반면 재택근무가 여전히 제한적이었던 한국과 일본 등의 출산율은 계속해서 하락했죠.
또 상대적으로 주거비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면서, 주거비 절감으로 생긴 소비 여력 여가나 레저, 가사 등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었죠. PwC는 재택근무가 근로자 연봉의 8% 인상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 효과들은 노동 생산성 증가로 나타나 경기가 코로나19 충격을 딛고 빠르게 반등하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미 연방준비제도가 지난 2021년 6월 펴낸 연구 'The Global Recovery : Lessons from the Past'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는 과거 위기보다 훨씬 더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이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발빠른 대처 덕분이기도 했지만, 노동 생산성이 크게 반등했기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디지털화, 자동화와 함께 유연근무 확산이 노동 생산성 향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과거 경기 침체 구간에서 노동 생산성이 장기적으로 하락해 경기 발목을 잡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사무실 복귀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심화 우려
이처럼 '재택근무=삶의 질 상승'을 경험한 미국 직장인들이 순순히 사무실로 복귀하길 바라는 건 무리입니다. 재택근무 혹은 하이브리드 근무를 유지할 수 있다면 평균적으로 급여의 25% 인하를 감수하겠다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사무실 복귀로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이 더 크게 하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문제는 기업 경영상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문제로 격상되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미 오클랜드대의 한나 칼마노비치 코언 교수의 'Return-to-office mandates and workplace inequality:Implications for industrial-organizational psychology' 연구에 따르면 사무실 복귀는 유연성과 '워라밸' 등 재택근무의 혜택을 되돌리고 있으며, 특히 여성과 돌봄 제공자(caregivers), 장애인 노동자, 저임금 노동자에 불균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무실 복귀가 전통적 근무 모델로 단순히 되돌아가는 것을 넘어 불평등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실제 미 노동부에 따르면 남성 직장인의 재택근무 비율은 2023년 34%에서 지난해 29%로 감소한 반면 여성은 2023년과 2023년 모두 36%로 별다른 변동이 없었습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이 주로 복무하는 업종의 차이 때문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녀 및 노인 돌봄 책임을 더 많이 짊어진 여성에게 사무실 복귀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해고 수단으로 사무실 출근 강제 의혹도
이런 상황에서 확산하는 사무실 복귀 지시는, 사무실 출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노동자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습니다.
지난해 KPMG의 조사를 보면 미국 최고경영자(CEO)의 79%가 2027년까지 하이브리드 형태로 근무하는 직원들을 모두 사무실로 복귀시킬 것이라 답했습니다.
또 87%는 사무실 출근 직원에겐 급여 인상이나 승진 등으로 보상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응하지 않으면 해고를 고려하겠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NBER의 조이 컬런 연구원은 "노동자가 사무실로 복귀할 수 없거나 복귀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결과적으로 급여가 더 높은 직업을 잃게 될 수 있어 임금 격차와 경제에 분명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급기야 WSJ은 미국 대기업들이 직원을 해고하기 위해 사무실 출근을 강제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단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ESG 차원에서 변화 노력 이어
미국 사회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불평등을 막기 위한 보완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교통과 주거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노력은 물론 오피스 건물에도 혜택을 줘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프로젝트에 보육시설을 넣으면 추가 면적 인센티브를 주거나 세제 헤택을 주는 식입니다. 사무실 복귀가 단순한 과거 회귀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들입니다. 이른바 RTO 2.0(Return to Office 2.0)으로, ESG 측면에서 E(Environment)에 맞춰졌던 초점이 S(Social)로도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들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근무형태를 고려해 성과지표를 섬세하게 재설계하고 있습니다. 사무실로 출근을 했단 이유만으로 혜택을 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단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면 근무를 할 경우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빌딩 공간 구성에도 사무실 복귀 구성원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직장 내 보육시설 확충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IFEBP에 따르면 오피스 공간에 보육시설을 제공하는 기업은 미국 평균 6% 수준에 불과하지만 직원수가 5000명 이상 대기업은 2배 이상 높습니다. 특히 금융, IT 업종 대기업의 경우 이 비율이 18%에 달합니다.
유연근무에 대응하기 위해 내구 구조 및 인테리어도 자유자재로 조정이 가능하도록 꾸미는 것도 눈에 띕니다.
서두에 언급한 JP모건 신축 본사 건물에는 19개의 리테일 매장뿐 아니라 2개의 야외정원과 명상실, 웰니스 센터 등도 포진해 있습니다.
오로지 업무에만 몰입하도록 공간을 배치하던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직원들이 집에 있는 것 못지 않게, 혹은 한 발 더 나아가 사무실 출근이 더 낫다고 느끼게끔 하겠단 의도에 따른 것입니다.
임차인의 선택을 받기 위해 오피스도 진화
오피스 빌딩들도 발맞춰 진화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소속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출근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사무실이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사무실 근무가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합니다.
공실률이 높은 오피스 시장 상황에서 빌딩은 임차인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출근하고 싶은 사무실을 만드는 건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단순히 쾌적한 사무 공간, 편리한 보조 시설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재택근무로 얻은 장점들을 사무실 근무에서도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새로운 니즈를 충족시켜 침체된 오피스 시장에서 차별적인 선택을 받으려는 적극적인 시도들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공실이 넘치는 샌프란시스코에선 'The Cove' 프로젝트의 성공이 눈길을 끕니다. 525 Market Street 빌딩의 7층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해 어메니티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피트니스 시설이 들어섰고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포함됐습니다. 당구와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입주 기업의 직원들은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사무 공간이 단순히 일을 하는 곳을 넘어 삶을 즐기는 공간 역할도 하겠다는 새로운 흐름 속에 탄생했습니다.
이 덕분에 리모델링 후 해당 건물은 17만 제곱피트의 신규 임차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리모델링에 들어간 비용은 2250만달러로, 샌프란시스코 최상위 등급 오피스 연평균 임대료(제곱피트당 60달러)를 감안하면 당장 신규 임차로 인한 임대수익으로 2.2년만에 회수가 가능합니다. 여기에 계약 갱신 및 신규 계약 체결 시 프리미엄 상승은 기정사실화 돼 있습니다.
사무실 복귀는 자산가치 재편 기회
이러한 성공 사례는 사회적 흐름과 그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여전히 공실이 넘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The Cove’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는, 단순히 편의시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사회적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막연히 좋아 보이는 부대시설은 마구잡이로 넣는 건 비용만 늘릴 뿐입니다. 이에 비해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질과 포용성을 담아낸 공간은 임차인의 선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사무실 복귀 흐름은 단순한 근무형태 전환이 아니라 자산 가치 재편의 기회이자 리스크 요인으로 읽어야 합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사례에서 보듯, 공실 축소만을 목표로 한 오피스가 아닌 사회적 포용성, 삶의 질 등 ESG 가치를 담아낸 오피스는 프리미엄을 확보하며 투자자산으로서 차별적 위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공실률만 낮추던 전통적 전략으로는 더 이상 시장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사회성과 연결된 오피스 투자를 선도하는 플레이어는 초과수익을 거둘 수 있다. 오피스는 이제 단순한 하드 애셋(hard asset)이 아니라, 노동·사회·도시·투자가 교차하는 플랫폼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오피스 시장은 경기순환적 회복 국면이 아니라 투자 패러다임 재설정의 국면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환을 얼마나 빨리 읽고 대응하느냐가, 향후 오피스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