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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 본입찰 D-1...윤곽 드러난 유력 후보와 변수는?
부동산 운용 패권 향한 최종 결전 엇갈린 전략 속 눈치싸움은 계속
이지스자산운용 새 주인을 가릴 본입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상업용부동산 시장은 물론 올해 한국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대형 딜로 꼽히는 만큼 도전장을 던진 국내외 자본들의 눈치싸움이 막판까지 치열하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지스 본입찰은 예정대로 11일 진행된다. 매각주관은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맡았다.
지난 8월 말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MBK파트너스, 캐피탈랜드, 힐하우스캐피탈가 숏리스트로 선정된 뒤 두 달 넘게 실사, 핵심 경영진 인터뷰 등이 진행됐다.
본입찰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인수 후보자들의 온도 차이가 감지된다.
MBK는 진통이 이어지는 홈플러스 사태 탓에 본입찰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룹 최고경영자(CEO)까지 한국을 방문하며 적극적으로 인수를 검토하던 캐피탈랜드는 매우 신중하게 막바지 저울질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힐하우스는 베일에 싸여 있다. 2016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을 시작으로 컬리와 크래프톤 등에 투자를 해온 만큼 한국 시장에서 낯선 이름은 아니다. 올해 'K뷰티' 바람을 타고 의료기기 업체 클래시스 예비입찰도 참여했다. 다만 고성장 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그간의 투자 이력 때문에 부동산 전문 운용사 인수 시도는 뜻밖이란 평가다.
때문에 시장에선 힐하우스가 부동산 운용업 스터디 차원에서 이지스 인수전에 발을 담갔다는 분석과, 한국 내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한 공격적 진출 시도라는 극과 극의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부동산 개발·운용사인 Samty Holdings 지분 50.04%를 인수하며 일본 부동산 시장에 진출하는 루트를 확보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화생명, 사업 다변화 통한 시너지 극대화 기대
시장 최대 관심사는 한화생명과 흥국생명이 본입찰에서 어떤 카드를 내밀지다.
인수 의지만 놓고 보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두 회사 모두 생명보험 비즈니스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부동산 자산운용업을 중요한 돌파구로 삼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가격이다. 인수 의지를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두 생명보험사가 어떻게 가격을 산정하는 지에 따라 이번 본입찰의 성패가 달린 것이다. 매도자가 제시한 인수금액은 8000억원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의 경우 주력인 금융업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M&A를 물색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앞서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지분 75%를 인수했으며, 인도네시아 노부은행 지분도 인수했다. 이를 통해 해외 금융시장 진출이란 지역 다변화에 성과를 내고 있다.
이지스 인수는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한화생명이 보유한 장기자금이 이지스의 부동산 개발·운용 역량과 융합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지스는 국내 주요 연기금, 공제회 등과 협력한 풍부한 캐피털 레이징 경험을 갖고 있다. 큰손들의 캐피털에 접근할 수 있는 핵심 플랫폼인 셈이다. 한화생명이 이지스를 인수하면 이를 발판으로 급이 다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이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등 M&A 사례를 보면 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인수해 정상화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 주된 전략이었다. 이지스처럼 단기에 급성장한 회사에 대한 가치 평가는 보수적일 수 있다. 실제 예비입찰에서 한화생명이 자체적으로 추정해 제시한 가격은 매도자의 가이드라인과는 거리가 다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시장에선 실사를 거치며 판단을 내렸을 한화생명이 본입찰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룹 차원의 지원 받고 적극 나선 흥국생명
결국 최대 변수는 흥국생명이다. 인수 주체로 나선 건 흥국생명이지만 태광그룹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다.
태광그룹은 석유화학 산업에서 벗어나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한 새로운 도약을 추구하고 있다. 부동산업은 그 중심에 있다. 이지스를 품는다면 야심차게 내세운 부동산업 진출 목표를 단숨에 달성하는 셈이며, 그룹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내세울 수 있다.
움직임은 구체적이다. 지난 3월 흥국리츠운용을 설립한 뒤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으며, 최근 흥국생명빌딩 본사 건물 유동화로 7200억원 가량의 실탄도 확보했다.
태광그룹이 보유한 충정로와 성수동 등 다수의 부동산 개발 니즈가 높은 것도 이지스 인수에 적극적인 이유다. 태광산업이 공시를 통해 밝힌 투자부동산의 공정가치만 1조원을 웃돈다.
운용수수료 중심인 일반 자산운용사와 달리 힐튼호텔 재개발 등 시행사업 비중이 높은 이지스의 역량과 노하우는 태광그룹에 매력적일 수 있다.
다만 이지스 인수를 준비하면서 유동성을 적극 확보했다는 것은 곧 그룹 차원의 재무여건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부동산업은 경기와 금리 등 시장 상황에 민감하다. 부동산 업황이 부진할 경우 태광그룹의 부담은 커질 수 있다.
또 자산운용업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점은 부동산 운용에 특화된 이지스와 원만한 조직 통합이나 펀드 운용, 개별 역량 확보 등 현실적인 부문에서 어려움을 일으킬 수도 있다.
2~3곳 진검승부 펼칠 듯
예비입찰이 뜨거웠던 만큼 본입찰 역시 선두주자는 아직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실사 등을 거치며 인수 후보자 간 온도 차가 드러나고 있는 만큼 본입찰은 2~3곳이 경쟁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하지만 과거 EQT의 Exeter 인수 등 예비입찰에선 수십 곳이 몰려도 정작 본입찰에선 소수만 남은 전례도 있어 참여 기업의 숫자만으로 흥행 여부를 판단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