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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장리츠만 유상증자 악몽에 떠는 이유

일반 상장사와 목적 다른데도 똑같이 유상증자 진행 '유상증자=주가하락' 자기실현적 예언이 악순화 심화 배당수익률 눈높이만 높아지며 시장 발전 저해 시장 흡수력·투자문화가 차이 만들어

2025-08-13 08:40:15김우영kwy@corebeat.co.kr

한국 상장리츠 투자자에게 유상증자는 금기어입니다. 증자 계획을 내놓는 순간 주가는 미끄럼을 타듯 흘러내립니다. 반면 미국 상장리츠는 덤덤합니다. 오히려 증자 발표 후 주가가 오르는 경우도 심심치 않죠.


리츠가 유상증자를 하는 건 똑같은데 왜 한국과 미국은 이처럼 다를까요? 이번 코어비트의 '마켓 인텔리전스 리포트'에선 어째서 한국 상장리츠만 유독 유상증자 악몽에 시달리는지 살펴봤습니다.


우선 유상증자부터 이야기해보죠. 상장사가 유상증자를 하면 주가는 일반적으로 빠집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단순산술적으로 생각해보면, 일단 유상증자를 하면 주식 공급이 증가합니다. 회사가 주주 몫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당장 큰 차이가 없는데 주식 수가 많아지니 주가는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뭔가 설명이 부족합니다. 유상증자를 하면 기업들은 그 돈으로 대단한 투자를 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거창하게 홍보합니다. 당장은 주식 수가 많아져 주가가 빠지는 게 맞을 수 있지만, 기업들 주장대로 투자가 잘 이뤄져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 궁극적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주가가 마냥 빠질 일은 아니죠.


이를 설명하는 것이 이른바 '정보전달가설'(information signaling hypothesis)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쉬운 예로 이해해보죠. 


A라는 사람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본금은 5억원입니다. 여기에 5억원을 더 조달해서 10억을 만들어 신규사업에 투자를 하면 1년 뒤 100억원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친구에게 동업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A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해당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좌우합니다. 


만약 이 사업으로 100억원을 벌 것이라고 99% 확신한다면 A는 은행 대출을 받는 게 현명합니다. 그러면 1년 뒤 원금 5억원에 약간의 이자만 붙여서 상환하고 나머지 95억원 가량은 독차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동업을 했다면, 지분율이 50대 50이므로, 1년 뒤 벌어들인 100억원 가운데 절반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반면 성공할 자신감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면 친구에게 동업을 하자고 제안하는 게 낫습니다. 실패할 경우 자기자본 5억원을 날리는 것에서 끝입니다. 만약 은행에서 빌렸다면, 자기돈 5억원을 날린 것은 물론 은행 빚까지 따라붙습니다.


후자가 바로 유상증자입니다.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누구보다 그 기업이 가장 잘 압니다. 그런데 대출 혹은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아니라 유상증자를 한다? 기업 스스로도 자신이 없으니깐 그런 게 아닐까? 바로 이렇게 유상증자가 일종의 부정적 신호(signal)가 되는 것입니다.


기업이나 일반 가계나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순서와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가장 먼저 벌어서 쌓아둔 돈부터 쓰죠. 기업으로 치면 내부유보금부터 씁니다. 그 다음이 회사채 발행 혹은 은행 대출이죠. 그러고도 급전이 필요하면 매입채무 같은 영업부채를 활용해 유동성을 확보합니다. 쉽게 말해 거래처에 줘야 할 돈을 차일피일 미루며 안주고 자기 필요한데 쓰는 것이죠. 티메프 사태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돈이 필요하면 유상증자를 결정합니다. 마지막 선택지인 셈이죠.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리츠는 억울합니다. 일반 기업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유상증자를 할 일이 참 드물죠.


하지만 리츠는 유상증자를 자주합니다. 2018년 상장한 신한알파리츠의 경우 지금까지 총 3차례 유증을 했습니다. 다른 대형리츠들 역시 비슷합니다.


그럼 왜 리츠는 유상증자를 할까요.


일반 기업은 돈이 필요하면 앞서 말씀드린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리츠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인 첫번째 방법이 불가능합니다. 벌어서 쌓아두는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리츠는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해야 합니다. 심지어 감가상각비 범위에서 이익을 초과해 배당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오히려 결손금이 쌓이게 됩니다.


이는 리츠라는 자산이 가진 기본적인 속성 때문입니다. 리츠는 부동산을 매입해 임대수익을 얻어 투자자에게 배당(income)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그런데 상장리츠는 어쨌든 주식입니다. 부동산 임대에 초점을 맞추면 안정적인 income이 중요하지만 주식 관점에선 capital gain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성장'이 뒷받침돼야 하죠. 또 주식이라면 이익의 원천도 다변화 돼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꾸준히 좋은 부동산을 편입해 덩치를 키워야 합니다.


모아둔 돈은 원래부터 없었고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하는 건 레버리지 요건 때문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통업처럼 영업부채가 많은 구조도 아니니, 결국 남은 건 유상증자뿐입니다.


이처럼 똑같은 유상증자지만 일반 상장사에겐 최후의 수단인 반면 상장리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 과정인 것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성장통이라기엔 리츠에겐 너무 아픈 유상증자

문제는 이처럼 상장리츠는 일반 상장사와 유상증자의 목적과 필요성,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확연히 다른데도 일반 상장사의 유상증자와 똑같은 절차와 방법으로 진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맹이가 다른데 껍데기를 똑같이 씌워놓으니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일반 제조업 상장사가 유상증자를 결의해 공시하고부터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신주 상장하기까지 대략 3~4개월이 걸립니다. 규모가 작거나 제3자 배정 같은 긴급 자금조달의 경우에는 이보다 조금 단축되긴 하나 그래도 1~2개월은 걸립니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 유상증자를 그만큼 신중하게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최후의 수단인 만큼 주주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유상증자를 하는지, 그 규모는 적절한지 등을 시장참여자는 물론 금융당국까지 들여다봅니다. 유상증자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죠.


하지만 리츠 유상증자는 그 목적이 구체적이고 뚜렷합니다. 어떤 부동산을 얼마에 사들이겠다고 밝히죠. 또 지속 성장을 위해선 반복해서 유상증자를 해야 합니다. 유상증자라고는 하지만 회사채 발행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반적인 유상증자 절차와 기간을 거의 그대로 따릅니다. 그래야만 하는 법적, 제도적 강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냥 유상증자란 껍데기에 알맹이를 쑤셔 넣어 맞추는 꼴입니다. 한국 상장리츠 역사가 길지 않고 규모도 크지 않아 아직 상장리츠만을 위한 관행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혹은 금융투자업계의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고요.


문제는 이런 유상증자가 반복되면서 유상증자 공고가 나오면 주가가 떨어지는 악순환을 더욱 공고히하고 있단 것입니다. 


유상증자를 공고한 뒤에 얼마에 주식을 팔 건지는 나중에 정해집니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지금 주가보다 나중에 더 싸게 주식을 팔 것이라고 믿으며 지금 당장 주식을 팔기 시작합니다. 


시장에 이런 투자자가 대다수라면 실제로 주가는 떨어집니다. 자기실현적 예언인 셈이죠. 


발행가는 낮아진 가격을 토대로 결정되기 때문에 실제 유상증자 공고 때보다 낮아지게 됩니다. 이후 유상증자 충격이 시장에서 잊혀지게 되면 신규 투자에 따른 배당확대 등이 부각되면서 주가는 회복합니다. 


투자자는 신주인수권 투자를 하거나 주가 하락 시 매수하는 방법으로 유상증자 기간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실현적 악순환에 리츠 시장 발목

누군가는 유상증자란 악재를 활용한 훌륭한 투자기회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 성장을 위한 유상증자가 리츠 주가 하락 행태로 굳어지면 상장리츠의 발전도 요원해집니다.


한번 생각해보죠. 리츠의 배당은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또 유상증자로 신규 부동산 자산을 편입하면 배당이 얼마나 늘어날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주가에 근거한 배당수익률을 쉽게 알 수 있죠. 


유상증자로 주가가 떨어지면 배당수익률은 오르기 때문에 투자자 관심이 조금 증가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배당에 대한 눈높이가 올라버린 투자자들은 그 이상을 투자하려 하지 않죠. 신규 자산 편입에도 리츠 주가가 지속적으로 올라가기 어려워집니다.


유상증자를 해서 우수 자산을 편입하는 이유가 뭔가요? 덩치를 키워 가치를 높이고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업이 자금조달로 더 많은 공장을 짓고 더 좋은 제품을 다양하게 만들어 팔아 시장의 관심을 받고 시총을 불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리츠는 이를 위해 기껏 유상증자를 했더니 주가는 빠지고, 아무리 좋은 자산을 편입했다고 해도 배당수익률이 7%정도 되면 주가가 그 이상은 좀처럼 올라가질 않습니다. 높아진 배당수익률 기대를 충족하려 '운영 자금'이란 명목으로 외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깁니다.


게다가 상장리츠 활성화를 위해선 지속적으로 새로운 리츠들이 시장에 들어와야 하는데,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진 배당수익률 눈높이를 맞춰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고만고만한 시장으로 정체되는 것이죠.


미국과 일본, 한국의 시가총액 1위 상장리츠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리츠가 얼마나 갈 길이 먼지 알 수 있습니다.


해결 방법은 문제의 근원에서 찾으면 됩니다. 유상증자 과정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문제말입니다.


실제 미국과 일본의 경우 리츠 유상증자는 단 며칠만에 끝납니다. 또 유상증자를 하면서 발행가를 대부분 고지합니다. 투자자들이 신주 발행가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유상증자 기간 불확실성에 따른 매도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한국 상장리츠처럼 자기실현적 주가하락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그런가하면 미국은 리츠가 필요한 총 유상증자 규모를 주주들에게 알린 뒤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발행하는 Form S-3(Shelf Registration), ATM(At-The-Market) 제도를 적극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A리츠가 10억달러를 앞으로 2년 간 어떤 목적에서 유상증자하겠다고 공개선언을 한 뒤 시장상황과 주가를 보면서 소량씩 그 기간 동안 신주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를 이용하면 대규모 유상증자에 따른 시장 혼란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마치 초콜릿 한 통을 한꺼번에 먹으면 배탈이 나지만, 서랍에 넣어 놓고 먹고 싶을 때 조금씩 빼 먹으면 그때마다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미국리츠협회 자료를 보면 리츠들이 시장 상황에 따라 자금조달 수단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리가 낮을 땐 회사채를 활용한 자금조달 위주였다 2022년 금리 인상이 가파르게 일어나자 ATM 활용이 크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ATM라는 또 하나의 수단을 가진 덕분에 시장 불확실성이 큰 기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상장리츠들도 지나치게 긴 유상증자 기간으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SK리츠는 지난 6월 유상증자를 제3자 배정으로 진행하면서 한달만에 모든 과정을 빠르게 마쳤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매우 길고, 주가 충격 역시 전보다는 덜하긴 했지만 분명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상장리츠가 적극적인 주주소통을 통해 편입 자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배당 계획에 대한 신뢰도 높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 환경 및 문화적 변화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가시적인 제도 개선과 불합리한 관행 타파가 우선돼야 합니다.


그 첫번째 노력은 유상증자 기간부터 현실성 있게 단축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