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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과잉 '고급 주거'... 햇볕은 언제 드나

수요 저변 확대에 2010년 이후 공급 크게 늘어

2024-09-13 07:58:57이현중hj.lee@corebeat.co.kr

초고액 자산 늘며 수요 확대... 대형 건설사도 참여

고급 주거 사업에 나서는 시행사들이 늘어나면서 공급이 크게 늘었지만 고금리의 파고 속에 자금 조달과 분양에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초고액 자산가가 늘어나면서 수요가 확대됐고 이를 계기로 시행사들의 사업지 확보 경쟁까지 벌어졌지만 시장은 이내 식어버렸다. 과잉 공급에 좌초되는 사업장도 잇따르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고가의 강남 아파트 투자가 붐을 이루기 시작하더니 2010년을 전후로 고급 주거 사업에 나서는 시행사들이 늘어나면서 고급 주거 공급이 크게 늘었다. 2010년 이후 준공된 강남권 주요 고급 주택은 청담동에만 마크힐스 1,2단지(2010년 준공, 38세대), 린드그로브(2017년 준공, 114세대), 효성청담 101 1차(2019년 준공, 35세대), 2차(2022년 준공, 28세대), 더펜트하우스청담(2020년 준공, 29세대) 등이다. 


이런 흐름은 청담동 뿐 아니라 서울 주요 고급 주거지에도 나타났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고급 주거지가 몰려 있는 한남동과 이태원동에서 매매된 주택(단독·다가구·연립·다세대)은 각각 205가구, 1019가구로, 전년보다 각각 10%, 15%씩 늘었다. 


고급 주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른 데에는 수요의 저변 확대가 원인으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과거 정. 재계 인사와 일부 연예인에 국한됐던 초고가 주택 수요가 2020년대 들어 20~30대 연예인, 운동선수, 스타 강사 등으로 확대됐다. 여기에다 2017년 이후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코인 열풍에 한꺼번에 막대한 현금을 움켜쥔 코인 투자자까지 가세하면서 수요가 불이 붙었다.

 

국내 초고액 자산가들은 크게 늘었다. 크레디트스위스(CS)의 '2022 글로벌 부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순자산 5000만 달러(한화 664억 원, 원/달러 환율 1329원 가정) 이상 한국의 초고액 자산가는 3886명으로, 전 세계에서 열 한 번째로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뉴욕이나 홍콩처럼 고가 부동산 시장이 형성될 수요 기반이 갖춰 진 것이다. 거액 자산가들의 자산 확대에는 부동산이 크게 기여하면서 이들이 투자와 실거주 목적으로 초고가 부동산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요가 늘어나자 시행사들은 사업지 확보에 나섰다. 특히 청담동 일대는 강남권 내에서도 희소한 한강 조망 입지를 갖췄으며 영동대로와 도산대로, 영동대교를 통해 서울 어디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장점까지 갖추고 있어 투자가 몰렸다. 건설업계도 고급주택 시공에 나섰다. 정부 규제로 정비사업의 텃밭인 서울에서 시공사 선정 사업지가 급속히 줄어들자 재건축이나 지역주택조합 사업 방식과 흡사한 고급주거 사업이 각광을 받았다. 안정성이 높고 고급 주거단지에 시공사를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회사가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디에이치(THE H)’라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2015년 처음 선보인 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PH129(2020년 입주), 에테르노 청담(2023년 12월 완공) 등이 대표적이다. 


에테르노 청담 테라스 전면 투시도(출처: 현대건설)


PF 위기에 공매 위기 불거져.. 정상화 된 곳도 나타나

상황은 바뀌었다. 사업에 뛰어든 시행사들이 고금리와 부동산시장 약세 등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대출 만기 연장에 어려움을 겪는 등 사업 진행이 순탄치 않다. 

 

옛 쉐라톤 팔래스 호텔 부지에 고급 주거시설을 새로 짓는 ‘더팰리스 73’ 프로젝트가 최근 브릿지론 만기 연장에 실패한 것이 대표적 케이스다. 시행사 측과 투자금 회수 방안을 협의하고 있는 브릿지론 대주단은 향후 더팰리스 73의 처리 방향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050억 원의 대출 가운데 선순위 대출이 81%를 차지하고 있어 공매로 넘길 경우 1순위 대주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청담동 프리마 호텔 부지를 고급 주거로 개발하려고 했던 르피에드 청담은 지난해 대주단이 두 차례에 걸쳐 브릿지론을 연장했으나 새마을금고의 만기 연장 거부로 기한이익상실(EOD) 위기에 처한 끝에 올해 신세계 프라퍼티가 시행사 지분을 인수하면서 일부 호텔이 포함된 초고급주거로 바뀔 전망이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본력이 약한 시행사가 진행하는 하이엔드 오피스텔의 경우 높은 공사비와 대출 등을 시행사가 자체적으로 부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일부 사업지의 경우 새로운 인수 주체가 등장하면서 사업이 본궤도에 들어가고 있어 금리 인하 분위기와 맞물려 부실 사업장의 정상에 대한 기대도 싹트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