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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연지동 사옥 또다시 매각하려는 까닭
5월 중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3분기 매각 완료 계획 "신규 사업 투자 재원" vs "현대아산 우발 채무 대응"
현대엘리베이터가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그룹 사옥을 매각할 방침으로 알려지면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의 보루처럼 여기는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신규 사업 투자 재원 마련과 자산 효율화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건설 경기 침체장기화로 건설업체 부실화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현대아산의 책임준공 약정 3300억 원에 주목하고 있다.
8년 만에 또다시 팔릴 운명에 놓인 현대그룹 사옥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종로구 율곡로 194(연지동) 현대그룹빌딩 사옥을 매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조만간 매각자문사를 선정한 뒤 5월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3분기(7~9월)에는 거래를 마무리 지을 방침이다. 예상 매매가는 최소 3000억 원대로 알려졌다.
1992년 준공된 현대그룹빌딩은 대지면적 1만 1106㎡(3360평)에 동관과 서관으로 구성된 쌍둥이 건물이다. 동관은 지하 4층~지상 12층에 연면적 2만 9220㎡(8839평), 서관은 지하 4~지상 16층, 연면적 2만 3256㎡(약 7047평) 규모로 지어졌다.
현대그룹에 연지동 사옥은 적잖은 사연을 품고 있다. 이 건물의 최초 주인은 극동건설. 시공까지 맡았던 극동건설이 2000년 10월 매각한 뒤 여러 차례 손바뀜을 거쳐 2004년 부동산 투자회사인 'ING코리아프로퍼티인베스트먼트'에 넘어갔다.
이후 삼성카드가 임차해 사용하던 것을 2008년 11월 현대그룹이 인수하면서 그룹 본사로 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2001년 현대차그룹에 매각한 서울 종로구 ‘계동 사옥’을 임차해 썼다.
2003년 8월 남편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별세로 회장 자리에 오른 현정은 회장에게 통합 사옥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당시 현대그룹의 연지동 시대 개막이 큰 화제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2011년 유럽발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 장기 불황으로 주력사인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자 인수 4년 만인 2012년 코람코자산운용에 사옥을 매각했다. 세일즈앤드리스백(sales and lease back, 매각 후 재임대)에 우선매수청구권을 갖는 조건이 붙은 거래였다.
절치부심한 현대그룹은 2017년 다시 연지동 사옥을 사들인다. 코람코가 그해 매각 작업을 진행하면서 부동산투자회사 JR투자운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자, 우선매수권을 행사한 것이다.
당시 현대그룹은 이에 대해 “△안정적인 경영 활동 기반 마련 △임대료 수익 등에 따른 영업이익 개선 효과 △인근 지구단위 개발계획에 따른 자산가치 상승 등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로봇과 UAM 등 사업 추진 재원 VS 3300억 책임준공 약정 대비
현대그룹은 이번에 다시 사옥을 매각하려는 이유에 대해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며 신규 사업 추진에 따른 투자 재원 사전 확보와 자산 효율화 차원”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룹의 주력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로봇과 도심항공교통(UAM) 등을 신성장동력 분야로 삼고,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미래형 도심 교통의 핵심사업으로 추진하는 UAM 관련해 이착륙 시설인 ‘H-PORT’ 상용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H-PORT는 자동 주차 시스템을 활용한 격납고와 드론 자동 주차 및 충전, 탑승객 승하차를 통합 관제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국토교통부로부터 이 사업 개발자로 선정돼 국비 105억 원을 지원받았고, 내년 말까지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또 지난 2월에는 대구광역시와 관련 사업 추진을 위한 MOU도 체결했다.
반면 업계에서는 계열사인 현대아산의 책임준공 약정 3300억 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아산이 책임준공 기한을 못 지킬 경우 시행사 부채를 모두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아산은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고 대북 사업이 중단되면서 건설사업에 주력해왔다.
최근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로 각종 부동산 개발 사업이 중단되고, 건설사들이 잇따라 법정관리 신청에 나서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부실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NICE신용평가도 지난 2월 10일 발행한 현대엘리베이터 평가등급 보고서를 통해 “현대아산에 제공하는 보증 규모는 2024년 9월 말 기준 379억 원으로 나타났다”면서 “다만 현대아산의 책임준공 약정금액이 3300억 원이며, 회사가 실질적인 지원 주체인 점을 감안하면 현대아산 관련 지원 부담이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