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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 인수전, 진짜 승자는 따로 있다

힐하우스 우협 선정 뒤에 숨은 지분 구조·자회사 조정의 이면 분석

2025-12-09 08:48:48김우영kwy@corebeat.co.kr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힐하우스캐피탈이 선정됐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힐하우스는 이지스 본입찰에서 1조1000억원을 제시했다. 인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던 흥국생명의 1조500억원을 근소하게 앞서는 최고가다. 


본입찰 이후 인수 후보자들이 추가로 가격 경쟁을 하는 '프로그레시브 딜'이 진행되면서 인수가가 높아졌다. 반면 한화생명은 예비입찰 단계부터 금액면에서 경쟁사들과 상당한 격차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협으로 선정된 힐하우스는 MOU 체결과 실사,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의 절차를 무사히 통과하면 이지스를 품을 수 있다.


자회사 Carve-out 놓고 국내·외 자본 '온도 차'

이번 딜 진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예비실사 단계에서 이지스엑스자산운용 등 일부 자회사를 매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주주 간 협약 사실이 알려지면서 딜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몰렸다.


시장에선 조갑주 리얼에셋지원 대표가 이지스 매각 이후 이들 자회사를 기반으로 별도 운용업을 다시 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흥국생명과 한화생명은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여겼다. M&A에서 자회사 Carve-out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계열사들이 독립 법인으로 구성돼 있으면 기술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핵심 인력'이다. 딜 이후 핵심 인력이 대거 이탈해 자회사로 '헤쳐 모여'를 하면 '껍데기'만 남은 회사를 산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원매자들은 자회사 매각 포함 여부와 핵심 인력 잔류에 대한 확약과 구속력 있는 문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힐하우스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인력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은 현실성이 낮은 데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되더라도 운용사의 생명줄인 LP의 투자 유치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힐하우스는 가격 면에서도, 조 대표가 요구한 자회사 매각 제외 건에서도 모두 높은 점수를 받은 셈이다.

조 대표, 딜은 키우고 자회사는 남기고

힐하우스 우협 선정은 조갑주 대표 입장에선 최상의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조 대표는 딜 초반부터 매각 성공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고 밝혀왔다. 실제 조 대표는 자신의 지분은 물론 우호적 지분까지 함께 매각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딜 사이즈를 키웠다.


당초 매각 대상은 창업주 고(故) 김대영 회장의 배우자 손화자 씨가 보유한 지분 12.4%를 비롯해 재무적 투자자가 보유한 물량 등 지분 60% 이상이었다.


여기에 조 대표가 참여하면서 매각 지분은 최대 98%까지 뛰었다. 이를 통해 초기 시장에서 거론되던 8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1조1000억원으로 금액을 키우는데 성공했다. 주주들 입장에선 두 팔 벌려 환영할 결과다.


대신 조 대표는 일부 자회사를 매각에서 제외하는 안을 주주들에게 제시해 협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자회사 지분 매각 이슈가 예비입찰이 끝나고 본입찰 전에 주주 간 협약 내용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안에 정통한 한 인사는 "조 대표는 이지스 지분을 최대한 비싸게 팔고 자회사를 기반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 자회사, 개발회사까지...조 대표의 앞날은?

조 대표는 이번 딜을 통해 적잖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조 대표가 직접 소유한 이지스 지분은 1.99%다. 그의 가족회사인 지에프인베스트먼트지분 9.90%를 합하면 11.89%에 달한다. 이번 딜로 약 1300억원을 거머쥐게 되는 것이다.


매각 대상에서 제외된 주요 자회사에, 1300억원이란 넉넉한 실탄까지 가진 조 대표에겐 또 다른 무기가 있다. 


지에프인베스트먼트를 축으로 한 투자·개발회사들이다.


그 중 하나가 시행사 아이알디브이(IRDV)다. 지난 2017년 지에프인베스트 자금을 출자해 만들었으며, 설립 당시 이름은 '이지스리뉴어블스'였다.


지에프인베스트먼트는 IRDV 지분 45%를 보유했으나 마곡 원그로브 시행 과정에서 논란이 제기되자 지난 2023년 전부 정리했다. 지분은 종전 50%를 갖고 있던 이준성 대표이사에게 '액면가'로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관계가 없는 별도 법인이다.


다만 IRDV가 이지스 여의도 본사에 입주해 있고, 설립 과정에서의 이지스와 파트너십을 홈페이지 소개에 명시하고 있어 시장에선 두 회사의 과거 협력 관계를 여전히 주목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또 액면가 거래 역시 법적으로 금지가 된 건 아니지만, 비상장 시행사 지분 이전 방식으로는 다소 이례적이란 지적도 있다.


그런가하면 조 대표는 부동산 컨설팅 기업 스카이밸류로 시행사 이스턴투자개발을 지배하고 있다. 스카이밸류는 조 대표의 부인 이수정 씨가 지분 42%를 보유하고 있다. 스카이밸류는 이스턴투자개발지분 51.4%를 갖고 있다.


시장에선 조 대표가 향후 어떤 방식으로 개발 사업을 전개할지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