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 시장동향

이지스 매각➂ 운용사 모럴해저드가 불러올 나비효과

'가격'만 본 주주들 LP 신뢰·운용 철학의 연속성은 어디로

2025-12-11 08:26:06김우영kwy@corebeat.co.kr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오히려 더 큰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연금이 위탁 자산 관련 민감한 정보가 원매자들에게 동의 없이 제공됐다며 운용사 교체 검토란 초강수를 뒀기 때문이다. 이지스 펀드에 출자한 다른 기관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매각 과정에서 운용사가 몸값을 올리기 위해 LP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운용사와 LP 간 이해관계가 충돌한 것이다.


운용사 대주주와 경영진은 기업 가치를 높여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의무가 있다. 국내 1위 부동산운용사로 성장한 이지스를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것은 이에 충실한 것이다.


동시에 운용사는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의무가 있다. 투자자, LP에 대한 신탁·수탁 의무다. 이들이 맡긴 자금이 운용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금을 맡긴 LP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운용해야 한다.


이는 수익률뿐만이 아니라 운용 철학과 프로세스의 연속성, 핵심 인력(키맨)의 안정적 유지, 정보 비대칭 방지 및 기밀 유지는 물론 LP에 대한 성실한 설명 의무도 포함된다.


주주 권리 챙기다 수익자 권리는 소홀

이번 이지스 인수전에선 이 의무가 사실상 증발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매각 과정에서 의사결정은 누가, 얼마에 사갈 것인가에 맞춰졌다. 국민연금 같은 LP들의 자금이 앞으로 어떤 투자철학을 가진 누구에 의해 맡겨질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오가지 않았다. 오히려 핵심 LP들의 주요 정보가 원매자들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은 수익자와의 기본적인 약속을 어긴 것이다. 


매각 과정에서 논란이 된 일부 자회사 Carve-out 요구 역시 신뢰를 훼손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운용사는 주인이 바뀌더라도 기존 펀드 자산을 성실히 관리해야 한다. 수익자 자산에 대한 의무다. 이는 운용업의 본질이며 운용사 신뢰의 핵심 원천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운용사 지분 매각 과정을 보면 주요 LP들에게 딜과 관련해 방향성과 잠재 인수자 풀, 매각 이후 운용철학 및 지배구조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공감대 형성이 이뤄진다.


특히 앵커LP의 경우 위탁 계약서에 경영권 변동이나 키맨 이탈 같은 중대 변화가 있을 경우 사전 통지는 물론 승인까지 받도록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LP는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공동의 파트너인 것이다.


지난 2019년 LF가 코람코자산신탁 경영권을 인수했을 땐 정준호 삼성카드 부사장을 새 대표로 영입해 LP를 안심시켰다. 2003년부터 10년 간 코람코에 몸담아 누구보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을 통해 주인이 바뀌어도 펀드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하지만 이지스의 경우 주요 주주가 Carve-out 조항으로 매각에서 제외한 자회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운용사를 만드는 '새 판 짜기'를 할 것이란 의심을 불러왔다. 이지스처럼 복잡다단한 펀드와 자산에는 주인이 바뀌더라도 상당 기간 연속적인 운용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시장은 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운용사의 경우 펀드매니저를 교체하려면 1~2년 동안 수익자와 소통하며 펀드의 전략과 운용에 대해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며 "수익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운용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자산운용업, 양적성장에 비해 내실은 부실

그간 국내 일부 운용사의 모럴해저드는 자산운용업 발전을 저해해왔다. 마스턴투자운용은 창업자의 사익추구로 금융감독원 제재를 받았다. 이지스 역시 조갑주 전 신사업추진단장과 그의 가족회사 내부거래로 제재를 받았다.


이런 사건들이 반복되며 LP의 피로감은 상당히 누적된 상태였다. 이번 사태는 그 위에서 터져나온, 운용사 주주와 펀드 수익자 간 이해상충의 본격적인 충돌로 볼 수 있다.


국내 부동산자산운용업은 2010년대 들어 금융당국의 진입장벽 완화로 급격한 양적성장을 이뤘다. 



2012년 80개였던 부동산자산운용사는 지난해 500개 가까이로 증가했다. 운용자산(AUM)은 같은 기간 15조원에서 100조원을 훌쩍 넘었다. 그 가운데 이지스는 단연 돋보였다. 2015년 3조7000억원이던 AUM은 32조3500억원으로 불어났다.


문제는 이 같은 양적성장에 비해 운용 문화나 내부통제, 수익자 책임 같은 질적 인프라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단 점이다. 이번 사태가 이미 예고된 충돌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경영권 매각은 결국 LP입장에선 투자자들의 돈을 운용사가 계속 맡을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경영권 매각을 지켜보는 시장이 주목하는 이유이다.

이지스, 차협으로 흥국생명 선정 '통보'

한편 이날 이지스 매각을 주관하는 최대주주와 주관사는 흥국생명을 차협으로 선정했다고 통보했다.


다만 흥국생명과 논의 없는 일방적 통보로 알려져 흥국생명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흥국생명은 같은 날 입찰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며 이지스 최대주주 손모 씨와 매각주관사인 모건스탠리 한국 투자은행(IB) 부문 김모 대표 등 5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흥국생명은 피고소인이 본입찰 이후 가격을 높이는 '프로그레시브 딜'을 진행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해 공정성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